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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영복선생님이 '저자'라는 호칭이 어색하다고 '강의'라는 책의 출판에 대해서 부담스럽다 하셨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것만 보더라도 그 분의 성품과 성격이 곧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해서 납득시키기도 쉽지 않은데, 동양고전이라는 사상가들의 어렵고 난해한 글들을 풀어서
함축돼 있는 것들을 강의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더불어 그 분은 인문학자가 아닌 경제학부 교수이다.)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 이라는 책의 독후감에 대해서 써보기에 앞서,

저자인 신영복 교수님을 소개해 볼까 한다.

신영복님은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에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등이 있다.

-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리뷰

책이름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글쓴이 : 신영복
제목 : 선인들의 글로 나를 깨우쳐 나의 사상 만들기 독법

수천, 수만년에 걸쳐서 완성된 논의들을 단 한 권의 책에 담아 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션 임파서블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이라는 타이틀로 탈바꿈 시켜 놓는다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일을 신영복선생님은 해냈다고 단언하고 싶다.

사유의 깊이가 남다르다.
사상들을 현재에 대입시켜 오늘날의 현실에 접목시키고 과거를 본받아 현재를 재조명하고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라는게 이 책의 의도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성인들의 글과 책을 어렵다고만 치부할게 아니고, 한 번 집중력을 갖고 공부해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선인들의 뜻을 깨닫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다르게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세월이 흐르면서 머릿속에 저장된 것들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도배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책을 통하여 깨우치고 발상의 전환을 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기회이자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강의'를 읽으면 읽을수록 사상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느낀다. 여러해 동안 다져진 사상을 나의 생각으로 전환시키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읽다보면 조금은 약간은 나도 나의 사상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의 생각, 나의 사고, 나의 신조를 넓히고 다지는데 있어서 '강의'는 정말 최고의 학습서가 아닐런지.

작가는 말씀하신다.
책을 통해서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정치, 경제, 사회 할 것 없이 우리나라는 세계는 혼돈의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건데, 고전을 통해서 국가를 생각하고, '나'란 존재에 대해서 철학이라는 사유를 할 수 있다면, 이 책의 포인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읽었다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책을 통해서 넓은 사고와 생각의 확장을 시킬 수 있고, 실천의 덕목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쁘고, 

선배님들의 고귀한 것들의 진수를 받아들이고 현실에 맞게 고쳐서 무엇보다 나에게 맞게 사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나의 사상 만들기 독법이 이 책의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다.

시서화로 대표되는 예술적 정서는 우리의 경직된 사고의 틀을 열어주고 우리가 갇혀 있는 우물을 깨닫게 해준다.
시와 산문을 많이 읽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이성적 사고보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강의' 챕터별 최고의 순간

1. 서론

과거의 사상과 현대의 사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적인 존재 형식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존재 형식도 갖는다. 동양이라는 어휘 자체가 공간적 의미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다. 궁극적으로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이다.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이다.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self-so)이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어떠한 지점도 결코 중심일 수가 없다.

논어에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란 글귀가 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는 뜻이다. 덕성이 곧 인성이다.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다. 이 사회성이
인성의 중심 내용인 것이다.

2. 오래된 시와 언

'시경'은 동양고전의 입문이다.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사실성에 있다.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광고 카피는 허구이고, 사이버 세계 역시 허상이다.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고, 가상공간일 뿐이다. 우리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게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인 것이다.

거짓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이다. 문학의 길에 뜻을 두는 사람을 두고 그의 문학적 재능에 주목하는 것은 지엽적인 것에 갇히는 것이다. 사회역사적 관점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시대와 그 사회의 애환이 자기의 정서 속에 깊숙이 침투되어야 한다.

문학이란 사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어떤 '혼'이 있어야 한다.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있게 한다. 군자는 무일(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는 성찰이 없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 부터 온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이다.

3. 주역의 관계론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이다. '주역'은 동양적 사고의 보편적 형식이다.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길 바랄뿐이다.

'주역'의 사상이란 개체의 능력을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단계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그에 따른 어려움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따라서 그럴수록 마음을 곧게 가지고
최초의 뜻, 즉 믿음을 회의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가을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추풍 속에 서듯이 우리 시대의 모든 허위의식을 떨어내고, 우리의 실상을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해.

'엽락이본분', 잎은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 우리 사회 경제적 자립성, 정치적 주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4. 논어, 인간 관계론의 보고

'학이시습지'의 습은 실천의 의미이다. 우리가 '논어'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사회 변동기에 광범위하게 제기되는
인간관계론의 대한 담론이다. 배운 것, 자기가 옳다고 공감하는 것을 실천할 때 기쁜 것이다.

'가이위사의'는 "스승이라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스승이란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스승이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한다.

덕치주의는 법치주의에 비해 보다 근본적인 관점, 즉 인간의 삶과 그 삶의 내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가 진정한 사회이다.

화(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한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평화와 공존이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화의 원리는 통일 과정의 출발점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종착점이라 할만 한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또는 이웃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의 원리로 인간관계로서의 덕이 사업 수행에 뛰어는 방법론으로서 검증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며 가치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나라 재상인 상앙이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는 원인이 나라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이라 생각하고,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백금을 하사한다는 방문을 붙였다는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다. 그만큼 신(信)의 의미는 엄격한 것이다.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이다.
우리는 지(知)와 우(愚)에 대하여 보다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사실 진정한 지란 무지를 깨달았을 때 진정한 지가 된다는 것. 자기의 지가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인가를 아는 지가 참된 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야말로 지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공과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겸허해야 되는 이유이다.

 





5. 맹자의 의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평가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논어'가 선어와 같은 함축적인 글임에 비하여 '맹자'는 주장과 논리가 정연한 논설문이다.

성선설의 요지는 모든 사람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우물에 빠지는 어린아이의 예를 들었다.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다. 맹자가 사단(四端)의 하나로 수오지심, 즉 치(恥)를 들었는데. 이 부끄러움은 관계가 지속적일 때 생기는 감정이다.

6. 노자의 도와 자연

동양 사상의 정체성은 논어보다는 오히려 노자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장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 가는 것이다.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이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이다.

무위란 작위를 배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개입하거나 자연적인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것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된다. 노자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물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과 같다고 한 이유는 첫째,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 둘째, 다투지 않는다는 것. 셋째,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이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인 것이다.

나의 '데미안' 내가 닮고 싶은 인간상을 말하는데, 노자가 이야기하는 없는 듯이 존재하는 분이다.
참석했을 경우에는 눈에 띄지 않고, 결석했을 경우에는 그 자리가 큼직하게 텅 비어버리는 그런 분을 닮고 싶다 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숨결을 위하여 한 줄기 바람이 되어라.'

7. 장자의 소요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무한한 소요유의 추구를 표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한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서 '종말'이란 그 어감과는 반대로 최고 단계를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최후의 체제라는 것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여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 본성에 가장 부합한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로 규정되고 있다.

이리화정(以理化情).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

책의 한계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예시문.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다.

장자를 몽접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나비 꿈' 때문이다. 장자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참다운 지식. 장자는 하늘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나누고, 결국 하늘에 비추어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고기는 현상이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천망'.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 할 수 있다.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되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 침투합니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과제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각 학파가 전개하는 논리적 정합성은 당대 사회가 공유하는 지적 수준에 의존하고 있다.

반전 평화론이야말로 전국 시대 최고의 사상이며 최상의 원리가 아닐 수 없다. 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 또한 있을 수 없기에.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다.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이다.

묵자의 고민은 소염론에서 나타나는데,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묵자는 임금과 제후가 훌륭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신하들로부터 물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물든다는 것은 곧 묵자의 사회 문화론이 됩니다.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천명합니다. 천(天)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 순자의 '능참'은 '실천론'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한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순자의 인본주의적 관점입니다.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 체계이다.

순자의 예론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 이론이다. 첫째 예란 물을 기르는 것이며, 둘째 그 물로써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는 것이다.

순자의 예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를 곧 법과 제도의 의미로 발전시켰다는 것인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순자의 인문 철학이 이 속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욕구가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단히 탁월한 인문 철학이라 할 수 있다.

10. 법가와 천하 통일

변화된 현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사고로 발상을 전환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범죄와 불법 행위라는 두 개의 범죄관이 있다. 절도, 강도 등은 범죄 행위요, 선거사범 경제사범 조세사범 등 상류층의 범죄는 불법 행위로 규정된다.
소위 범죄와 불법 행위는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현저히 차이가 난다.
범죄 행위는 가혹한 것인데 반하여 불법 행위는 관대하게 처리한다. 이것은 주나라 이래의 관행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역설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정나라의 차치리라는 사람의 일화(자기의 발을 본뜬 탁을 집에 놔뒀다고 시장에 갔다 다시 집에 와서 시장에 갔는데 장은 파하고 신발은 살 수 없었다.) 직접 신어보고 신발을 고르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말에 대한 차치리의 대답은 '탁은 믿을지언정 내 발은 믿을 수 없다.'
학문이나 이론의 비현실성과 관념성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이든 노래든 글이든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결정적인 것은 인간의 진실이 담겨 있어야 인간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법가는 물론, 모든 사상 체계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게 있는데.
모든 사상은 다른 모든 사상과 관련돼 있으며 파란만장한 역사적 전개 과정의 일환으로 출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철학 체계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식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개념적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 강의를 마치며

깨달음의 의미를 지극히 명상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깨달음은 고전 읽기의 시작이며 그 끝이라 할 수 있다.

과거란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일 따름이다. 역사의 모든 실천은 무인지경(無人之境)에서 새집을 짓는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담론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바로 '인성의 고양' 이라는 것.
인성의 고양은 '바다로 가는 여행' 또는 '바다로 가는 겸손한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고전 강독을 마치며 신영복선생님이 과제로 던진 화두!
'창신(創新)'과 관련된 것. 창신은 재조명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가 요구된다.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다.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따라서 창신의 장에서 개념과 논리가 아닌 '가슴'의 이야기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독후감 후기에 대해서 포스팅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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